바리스타 배틀 개발 이야기

스위트게임즈의 새로운 작품, '바리스타 배틀'의 개발 초기 과정을 공유합니다.
2024-04-09
SuiteGames

시작하기에 앞서...

바리스타 배틀은 스위트게임즈가 설립되기 전인 2021년 중순, 다른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보드게임 아이디어를 논의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나온 기획이었습니다. 당시 회사 내에서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로 '위너셰프'와 함께 '바리스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위너셰프의 형태를 커피라는 테마에 맞춰 재구성하고자 했던 것이죠. 위너셰프는 타일, 일꾼놓기 경영 시뮬레이션 형식의 게임으로, 단순히 "주문을 빠르게 처리해 경쟁에서 승리하세요"라는 기획으로 출발했습니다.

실제로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고, 22년도에는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아이디어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게임에 커피, 경쟁 요소를 더해 바리스타가 기획되었죠.

커피와 경쟁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임으로 '커피러시'가 있죠? '커피러시'를 보다가 묻혀 있던 바리스타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록해 두었던 아이디어를 읽어보니 커피러시와 유사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많은 변경이 필요했습니다. 저를 보드게임 "작가"라고 불러주시니 이런 부분에서는 늘 신중해지곤 합니다.

그렇게 최초 기획했던 구성을 봉인하고, 커피와 카페의 경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바리스타 배틀입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공모전 & 피칭데이

작가 입장에서는 공모전 같은 행사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게임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좋지만, 마감일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감일이 정해져야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보니 일정에 맞춰 게임 제작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이번에 공모전 소식과 더불어서 피칭데이 소식도 있습니다. 두 행사는 서로 다른 게임을 제출해야 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두 일정은 참 빠듯하고 가능할까 싶긴 했지만, 둘 다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 중 일정이 더 먼저인 피칭데이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딱 떠오른 게임이 바리스타였습니다. 2023년 출시한 럼샷은 "마지막까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참여하는" 규칙에 호응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술 먹이는 테마 때문에 19금 게임이다."는 점에 아쉬워 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메인 테마를 바꾸자니 럼샷 특유의 재미가 확 사라질 것 같아서 리테마 계획을 제대로 못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스타들이 경쟁하는 테마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바리스타 배틀을 피칭데이에 가져가 보기로 했습니다.

Rum Shot -> Espresso Shot

우선은 럼샷의 상호작용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되, 더 간결한 게임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카드 수는 럼샷이 100장 이었는데, 바리스타는 54장으로 줄이고, 게임 테마에 맞게 세부 규칙을 수정했습니다.

초기엔 리얼타임 라운드 방식으로 기획을 했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라운드 진행 준비가 되면, 턴 순서 없이 카드를 내거나 먹는 행동을 해서 빠르게 오더를 완료하는 게임입니다. 만약 이대로 나왔다면 아마 난장판 난투 게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손 느린 플레이어와 숙련자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할 것 같아 리얼타임 규칙 대신, 턴 플레이 방식으로 변경 했습니다.

럼샷은 술잔을 일종의 라이프로 계산해서 많이 얻으면 떨어지는 방식이었지만, 바리스타는 오더와 레시피로 나눠서 많은 오더를 처리하면 높은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변경 했습니다. 각 오더에 정해진 레시피 카드를 넣어서 점수 얻는 게임은 평범함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큼 익숙한 게임입니다. 그래도 게임의 테마에는 이게 가장 적절하겠다 싶어서 오더와 레시피를 나누는 방식은 유지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규칙 초안

첫 규칙을 작성하면서 럼샷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스플랜더나 다른 게임들의 영향도 좀 받았습니다. 아래 초안은 피칭데이에 참여한 규칙은 아니고, 바리스타의 개발 과정에 대한 기록 정도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1. 정해진 숫자 만큼 오더가 밀리면 탈락
  2. 오더는 각 플레이어마다 자신에게 할당된 오더가 있습니다. (랜덤뽑기)
  3. 레시피 카드로 오더를 처리합니다.
  4. 오더는 라운드마다 계속 플레이어들에게 추가되고, 제한된 숫자의 레시피 카드로 오더를 처리 해야하는데, 이 오더가 계속 누적되었을 때 일정 숫자를 초과하면 탈락합니다.
  5. 그런데 탈락한 플레이어는 그 즉시 게임에서 아웃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쌓였던 오더를 활용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오더를 추가로 넣을 수 있습니다.
  6. 스플랜더의 귀족처럼 스페셜티 카드를 추가해서 추가적인 보너스를 주는 방식도 있습니다.
  7. 오더카드가 소진되면 최후의 생존자가 여럿인 상태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처리한 오더만큼 점수로 계산해서 보너스를 포함해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입니다.

초안인 만큼 규칙도 많이 러프하고, 지금은 구현 안한 규칙들도 포함되어 있네요. 초안을 기준으로 프로토타입 카드를 우선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barista battle card images

barista battle card images

프로토타입 이미지 제작

역시나 DallE 가 초반에는 열일을 해줍니다. 원하는 톤과 느낌을 정해서 최대한 균일한 느낌으로 그림들이 그려질 수 있도록 프롬프트를 조정합니다. 프롬프트 작성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ㅇㅇㅇ 아이콘"이라고 명령을 하게 되면 웹사이트에 사용할 아이콘 위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느낌의 ### 하는 일러스트"라는 프롬프트가 이번 작업에 가장 적합하게 나왔습니다.

DallE 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참고할 레퍼런스 조사도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유사한 느낌의 레퍼런스는 주로 Behance, Pinterest 에서 찾고, 그냥 바로 사용할 에셋들은 envato에서 다운받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DallE를 포함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사이트는 거의 다 활용했네요. 데이터를 다운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하게 정리하고 가공하는 것도 참 번거롭고 힘든 일입니다.

프로토타입 테스트

게임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바로 테스트부터 진행합니다. 만들고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 것이 일상이긴 하지만, 수정은 적을수록 좋겠죠. 하지만 언제나 기대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프로토타입에서 정말 많은 수정사항이 발견되었고, 해결을 위해 다시 수정하고, 인쇄하고, 자르고...무한정 반복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정해진 날짜가 있으니 일정 수준 내에서 타협할 수 있는 부분들은 타협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카드 게임을 출시한 경험 때문일까요. 패키지에 들어가는 카드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너무 줄인 것이 문제인지 게임 중 병목 현상이 발생해서 해결하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그런데 카드게임은 아무래도 운빨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이 부분을 미리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 해봐야 어떤 카드를 얼만큼 넣을지 서서히 보입니다. 하지만 한, 두 판 만으로 통계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정말 많은 회차의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결국 기계의 힘을 빌렸습니다.

python coding screen shot

python coding screen shot

5천판x10번 돌려보기

파이썬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돌려봤습니다. "프로그래밍도 할 줄 아나요?" 라는 질문에는 제가 하는 대답은 늘 같습니다. "저는 못하고, Chat GPT가 잘해요." GPT한테 게임 규칙과 프로그램이 어떻게 동작해야 하는지 지시해서 코드를 만들고 수정하면서 시뮬레이션을 진행 했었습니다.

초반에는 50%의 확률로 바리스타가 아예 진행이 불가능한 무한 루프가 나오기도 하는 등 버그가 참 많았는데요. 지금은 각 플레이어의 승률, 플레이어 성향 같은 부분들이 포함돼서, 선 플레이어의 승률나, 카드의 출현 빈도를 조절 했을 때 오더 성공 확률 정도는 계산이 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더 좋은 코드나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보고 싶긴 한데, 일단은 이 정보를 가지고 카드의 수량을 좀 더 조절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초기에 계획했던 54장은 너무 적은 숫자였던 것이죠. 어쩔 수 없이 71장으로 카드 수량을 변경하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23년에 있었던 보드게임 작가 협회 PnP 공모전을 하면서 느꼈던 거지만, 뭔가 제약을 하나 걸었을 때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거나 성취감이 크게 오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카드 장수를 제한하고 추가하는 컴포넌트를 최소화 하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제일 Best 라고 생각합니다. 러브레터 보면 몇 장 안되는 카드 가지고 정말 재미있으니까 말이죠.

바리스타의 카드 수량을 조절한 덕분에 초기 병목 구간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상으로는 선/후 플레이어의 승률이 거의 동일하게 나왔고, 탈락 순서도 예상한 대로 무작위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사람들과 플레이를 진행 했습니다.

그런데...

끝날 때 까지는 끝난게 아닙니다.

피칭데이 바로 전날 프로토타입의 테스트 플레이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전의 테스트 플레이에서 확인되지 않은 상황들이 발생 했습니다. 게임이라는게 아무래도 플레이어의 성향을 타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 테스트에서 만난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얼른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에 피칭데이가 있는 날 새벽 3시까지 작업하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왜...

그리고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은 늘 발생하죠. 프로토타입을 급하게 수정하고, 피칭데이에 참여 했지만, 현장에서 카드 운빨이 참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뭐...보드게임 테스트 하면, 작가만 공격 받고, 운빨 안 좋은게 거의 국룰이긴 하지만, 그날 따라 유달리 제 운이 심각하게 안 좋았습니다.

원래 한 판 당 20분으로 계획한 게임이 피칭데이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게임이 안 끝나는 병목 현상이 확 생겨버렸습니다. 크게 손댄 것 없이 게임이 지루해져서 많이 당황스러웠네요. 그래도 애써 피칭데이는 좋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제 준비가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계셨던 코보게 직원분들이 좋은 피드백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집으로 오는 동안에 머리는 좀 더 정리가 되었네요.

수원은 벚꽃이 완전히 만개해서 운전하면서 눈호강 좀 했습니다.

suwon

suwon

다음 수정 전에...

이제 다음은 코보게 공모전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모전 제출 게임도 예전부터 기획하고 천천히 준비하던 게임입니다. 원래는 따로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공모전이 있으니 공모전 먼저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바리스타 배틀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피칭데이 미팅 덕분에 카드 수량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도 하고 있고, 나름 획기적인 메커니즘도 하나 추가할 예정입니다.

언제 출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으로 바리스타 배틀을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